AI는 지금, 창작의 어디까지 와 있는가
― 영화·드라마·웹툰 산업을 통해 본 ‘결정의 이동’
지난 글에서 나는 질문만 남겨두었다.
AI는 단순한 도구인가, 아니면 새로운 창작자인가.
그리고 AI 시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예술을 만들어가야 하는가.
이 질문은 철학적이지만, 이미 산업의 한복판에 내려와 있다.
AI는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사용되고 있는 기술이며,
그 사용 방식은 예술의 성격 자체를 서서히 바꾸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 변화가 실제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영화·드라마·웹툰 산업의 사례를 통해 차분히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 산업: AI는 영화를 만들지 않지만, 만들어지지 않을 영화를 고른다
현재 영화 산업에서 AI는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
감독의 자리에 앉지도 않고, 카메라를 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영화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할리우드의 주요 스튜디오들은 AI를 활용해 시나리오의 흥행 가능성, 배우와 감독의 조합,
국가별 관객 반응과 수익 구조를 예측한다. 이 시스템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대부분의 경우 정확하다.
문제는 그 정확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다.
AI는 성공 확률이 낮은 프로젝트를 조용히 걸러낸다.
너무 낯설고, 전례가 없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사라진다.
이것은 검열도 아니고, 탄압도 아니다.
다만 확률에 근거한 배제다.
그러나 예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처음부터 성공이 예측되었던 작품은 거의 없다. 영화는 언제나 ‘무모한 선택’ 속에서 진화해 왔다. 그러기에 인간적이고, 같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AI는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술과 기술의 간극이 드러나고 있는 현실이다. 씁쓸하다.
드라마 산업: AI는 서사를 창조하지 않고, 서사를 관리한다
드라마 산업에서 AI의 역할은 더 직접적이다.
특히 글로벌 OTT 플랫폼들은 시청자의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사의 리듬과 구조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몇 분 후 시청자가 이탈하는지,어떤 캐릭터가 등장할 때 반응이 약해지는지,어느 장면에서 배속 재생이 시작되는지까지 AI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 결과, 작가에게 전달되는 조언은 매우 구체적이다.
갈등은 더 빨리 시작되어야 하고, 관계는 더 빠르게 진전되어야 하며, 정서적 여백은 줄어들어야 한다.
이 조언들은 대부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맞는 이야기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원래, 시청자가 불편해지는 지점에서 의미를 만들어왔다.
설명되지 않는 침묵, 지나치게 느린 전개, 불친절한 인물들. 이런 요소들은 데이터상으로는 실패에 가깝지만, 기억 속에서는 오래 남는다.
그러기에 AI가 드라마를 평균적으로 더 잘 만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평균을 넘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몫이 남아 있다고 본다. 그 인간다움이 더해져서 감동을 남기는 드마라가 나올 수 있다.
웹툰 산업: AI는 노동을 줄이지만, 세계관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웹툰 산업에서 AI는 비교적 환영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소 명확하다.
웹툰은 감성 산업이면서 동시에, 극도로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 노동에 AI는 배경을 그려주고, 채색을 보조하며, 콘티의 초안을 제안한다.
이 기술 덕분에 작가는 시간을 벌고, 체력을 지킨다.
그러나 웹툰의 본질은 선의 정교함이나 색의 완성도에 있지 않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왜 이 인물이 이 세계에서 살아야 하는가,
왜 이 폭력은 정당화되지 않는가,
왜 이 결말은 피할 수 없었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AI는 컷을 나눌 수는 있지만,
그 컷에 담긴 윤리와 세계관까지 설계하지는 못한다.
그 책임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인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AI는 창작자인가
이 질문에 대해 나는
AI는 창작자가 아니다.라는 비교적 확실하고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AI는 창작의 조건을 바꾸는 존재라 생각한다.
무엇이 선택되고,
무엇이 탈락하며,
무엇이 애초에 기획되지 않는지를 결정하는 힘을 다수의 의견을 빅테이터로 반영한
AI는 점점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AI 시대의 예술가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기보다,
무엇을 끝까지 지켜낼 것인지를 선택하는 사람이 된다.
데이터가 말리는 이야기,
효율이 반대하는 장면,
확률적으로는 실패에 가까운 감정.
그것을 끝내 남길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앞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것 남은것
예술가가 진짜 해야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